2008년 06월 24일
보들레르가 궁금해서
보들레르
오늘 밤 달은 더욱 느긋하게 꿈에 잠긴다.
"일 초의 순간이나마 무한한 쾌락을 얻는 이에게 영원한 형벌쯤 대수이랴."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사막을 질주하는 영혼들
미친 그림자들아, 너희 욕망의 끝까지 밀고 나가라
너희는 절대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무리, 방랑하는 무리, 선고받은 무리로부터 멀리
사막을 가로질러 늑대처럼 달려라.
절망한 영혼들이여, 너희의 운명을 창조하라.
그리고 너희 속에 자리잡은 무한에서 도망쳐라
- 보들레르
(비르지니 데팡트, '베즈 무아'에서 재인용)
데카당스
보통 쇠퇴·조락·퇴폐를 뜻하는 프랑스어
이것은 원래 로마제국 쇠망기의 타락과 방탕의 시대상을 가리킨 말로 특히 문학·예술의 건전한 정신이 쇠잔하여 예술활동이 정상적인 기능을 잃고 퇴폐적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P. 베를렌·J.N.A. 랭보·J. 라포르그·O. 와일드 등이 그 대표적인 시인·작가로서, 그들의 작품은 모두 관능주의·향락주의·악마주의·탐미주의 등을 담고 있다.
이것은 문예사조상으로 E.A. 포·C.P. 보들레르 등에 의해서 개척된 반(反)로망주의·반(反)실증주의의 근대적 의식을, 또 사회적으로는 1871년의 파리 코뮌 패배 후의 소(小)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절망·도피·시니시즘을 반영하였다. 데카당스, 즉 데카당파(派) 문학은 무엇보다도 미와 생활의 기묘한 일치가 특징이다. 술·여자·도박·방랑·결투·감옥은 베를렌이나 와일드 등의 작품에 빈번히 드러나 있는데, 그 반도덕적·반사회적 실천에 의해서만 그들의 환상의 미는 현실적·사회적 의의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전통의 파괴·배덕(背德)·반역의 특성을 주된 내용으로 했다. 이것은 미의식과 시법(詩法) 위에 하나의 현저한 혁명을 가져왔으며 표현수단으로서의 말에서 그 일상적인 의미내용을 제거하고 그것을 말 자체의 질서에 따라, 즉 말과 그 조합(組合)이 빚어내는 소리·빛·냄새 등의 뉘앙스를 추구함으로써 말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인 S. 말라르메에 의해 절정에 달하여 상징주의를 확립, 근대시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세기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전역에 퍼진 풍조로서, 퇴폐적인 문화에 미적 동기를 구하는 관능주의를 이르던 말. 퇴폐파.
보들레르 - 이방인
Charles Pierre Baudelaire - L’étranger
너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말하라,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아버지냐, 어머니냐, 누이? 아니면 동생이냐?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동생도 없소'
친구들은?
'친구라니 나는 아직 그 말의 뜻도 모르고 있는걸'
조국은?
'나는 조국이 어느 위도상에 있는지도 몰라'
미인은?
'미인이야 기꺼이 사랑하겠지. 불멸의 여신이라면'
그럼 너는 황금을 사랑하느냐
'나는 황금을 미워해. 당신이 신을 미워하듯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괴상한 이방인아
'나는 구름을 사랑하지......저기 흘러 가는......구름......저 신기한 구름을.
보들레르 : Il me semble que je serais toujours bien la ou je ne suis pas.
다른 말로 하자면 :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 같다.
좀더 의미에 맞게 해석한다면 : 어디든 지금 내가 있지 않은 곳이 내가 나 자신인 곳이다.
또는 아주 대담무쌍하게 옮기면 : 어디든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 From '뉴욕 3부작' by Paul Auster
1821년 파리에서 태어나, 1867년 파리에서 죽음
친부가 일찍 죽자(1827) 보들레르의 어머니는 1828년 직업군인 오픽Aupick과 결혼했다. 계부와 빚은 갈등 때문에, 보들레르는 1844년 가족으로부터 금치산자 선고를 받게 되었다. 특히 너무 잦은 그림구입이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첫 번째 전시비평은 1845년 출간됐고 장르를 분류할 때 디드로Diderot의 ꡔ살롱Salonꡕ에 나타난 형식적 범형에 공감했다. 이와 달리 1846년의 전시비평은 전시된 작품을 기초로 하여 일반적인 미술성찰을 정식화하는 계기로 간주된다. 그것은 보들레르의 가장 중요한 미술 관련 글인 1859년 <현대미술전Salon>에서 두드러지게 강화되는 경향이다. 그 기간 중간에 예술적으로 서로에게 상극인 들라크루와Delacroix와 앵그르Ingres에 대한 성찰, 희극에 대한 고찰, 조형예술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에 대한 성찰은 물론이요 1857년 그의 첫 번째 시집인 <악의 꽃Fleurx du mal>이 출간됐다(예술에 관련된 몇 개의 운문도 포함됐다). 자신이 구상한 산문시라는 새로운 장르에 발맞춰, 대도시의 근대성Modernität을 주제로 삼았던 보들레르는 조형예술에 나타난 근대성을 경애하며 찬양했다(<현대성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 1863년 출판). 에드가 앨런 포E. A. Poe의 전집(1856년과 1857년)의 소개 글을 제외하면 보들레르의 문학비평(위고, 플로베르, 고티에 연구)은 미술비평보다 그의 미학을 해명하는 것이 별로 없다. 보들레르의 유일한 음악논문(<리하르트 바그너와 파리의 '탄호이저'Richard Wagner et Tanhäuser à Paris>, 1881)은 몇몇 예술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미적인 지각의 다양한 종류 사이에서 형성되는 교감Korrespondenzen을 다룬 그의 이론에 근거한 완벽한 에세이적 해명으로 간주된다.
많은 결실을 맺었던 불란서의 서정시인은 거듭해서 가장 중요한 불란서의 미술비평가로 간주된다. 미술과 미술성찰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보들레르미학의 근본명제다. “위대한 모든 시인은 본성상 불가피한 비평가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유한 법칙에 대한 인식 및 승인은 그들의 예술생산물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비평가 가운데 최고의 비평가며, 최고의 회화비평은 때때로 소네트Sonnet나 비가Elegie다. 미학저술에서 보들레르는 자신의 사유를 인상적으로 형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미발표 시에서 발췌해서 사용한다. 즉 그는 자신의 서정시에서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거꾸로 주석한다. <등대Les Phares>가 가장 잘 알려진 사례다.
객관성Objektivität과 편파성Parteinahme. 미술비평에서 보들레르는 온갖 종류의 미학적으로 총체화하는 법칙제정보다 좀더 객관적으로 처신할 것을 매우 과격하게 편파적으로 요청한다. 그는 기존의 어떠한 예술규칙 대신에, 예술작품 자체에 근거한다. 즉 전자는 예술가의 개별적 관점과 (예술가의 관점을 실현시키는) 기술적 수단 사이의 일치를 척도로 삼아 판단된다. 미적인 위대함은 전통의 의존에 있는 것도 전통과의 교조적 단절에 있는 것도 아니라, 창조적 활력의 유일성에 있는 것인데, 그러한 유일성을 강조하고 해명하는 일에서 비평의 가장 고결한 과제가 성립한다. (예술가의 불가결한 개별성 속에는 종종 오해된 격언의 의미 또한 담겨 있다. 즉 미는 언제나 괴이한 것일지 모른다는 것. “괴이함Bizzare”은 보들레르에게 유일성의 표현이다.) 스탕달Stendhal에 기초하여 보들레르는 관찰하는 기쁨 속에서 미적인 성취를 가리키는 확실한 징후를 인식한다. 그리고 비평가로서 그는 “인식 속의 황홀”을 탈바꿈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기쁨의 근본을 캐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성과 상상력. 들라크루와의 미술을 성찰할 때 보들레르는 다음의 격언을 인용한다. 자연은 구성Kompostion이 아니라, 단지 “사전”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각가능한 세계에 대한 보들레르의 관념의 근원은 (상상력이 변화시켜야 하는) “이미지 및 징후의 창고”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만 하다. 현실성 또한 상상력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제제는 일찍이 들라크루와미술의 주제적 출발점이기 때문에, 이는 동일한 결과로서 모든 회화장르에게 적용될 수 있다. 에드가 앨런 포를 다룬 논문에서 보들레르는 자신의 상상력개념을 깊게 파고든다. 포우에게 상상력은 능력의 여왕(“la reine des facultés”)일 것이다. 상상력은 단숨에 모든 철학적 방법을 뛰어넘어 사물들 간의 은밀하고 신비로운 결합을, 더불어 그것들의 교감과 유사를 인식한다는 점에서 거의 신적이다. 하지만 상상력만이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심사숙고한 구성전략이 덧붙여 필요하다. 포의 전략은 보들레르에 고유한 서정시적 실천을 입증하는 원칙들을 갖고 있다. 그 시인은 자신의 영감과 무아지경보다는 독자의 무아지경을 야기하고자 할 때 필요한 수단에 몰두해야 했을 것이다. 포가 장문의 서사시나 교훈시를 거부했던 것을 보들레르는 온갖 종류의 교화문학을 혐오하는 것으로 강화한다. 즉 예술은 예술자체의 목적 밖에 없다.
낭만주의와 근대성. 보들레르의 낭만주의개념은 <라신과 셰익스피어Racine et Shakespeare>에서 스탕달이 전개한 정의에서 끌어낸 것처럼 보인다. 낭만주의적 예술이야말로, 언제나 당대와 동조하며 성립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주제로까지 확장시킨 것은 스탕달과 관련된다. 즉 낭만주의적인 것은 주제의 선택도 현실성의 복제도 아니라, 감정의 방식인 것이다. “낭만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근대예술을 생각할 것이다. 즉 예술의 모든 수단을 통해서 표현된 은밀성Intimität, 영성Spiritualität, 색채, 무한성Unendlichen에 따른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들라크루와 같은 사람이 이행하는 기준의 전부다. 즉 보들레르가 현재라는 주제를 열망한다는 것은, 그가 회화의 발자크를 외쳤던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보들레르는 근대성의 예술가의 최고봉으로 이류화가인 콩스탕탱 기C. Guys를 들었는데, 그의 주된 장점은 우아한 예절과 유행을 따르는 여성에 대한 소묘작업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행의 묘사에서 기는, “합리적・역사적 미이론”에 이르기 위해서, 예술에서 무시간성Zeitloen과 시대연관Zeitgebunden의 변화관계를 정의하려는 보들레르의 시도에 계기를 줄 수 있었다. 미는 영원한 요소는 물론이요 상대적 요소로 구성된다. 전자가 예술의 영혼이라 한다면 후자는 예술의 육체이리라. 즉 시대연관이 없다면 무시간성은 수용될 수 없는 것이다. 기는 근대성을 의식적으로 얻고자 했던 셈이다. 즉 그는 시대에 연관된 유행으로부터 시에 대한 유행의 개입을, 또한 일시성으로부터 영원성을 얻어 냈던 것이다.
맥락
보들레르미학의 독창성은 그것의 이념보다 그것의 표현에 깃들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폭넓게 논의된 사유들은 엄밀하게 통합되며 서로서로 결실을 맺게 하는 그의 미학의 역량에 있는 것이다. 이미 디드로는 자연을 순진하게 모방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했다. 보들레르는 교감(혹은 공감각Synästhesie)의 사유를 E. T. A. 호프만Hoffmann에서 찾았다. 하이네Heine는 보들레르에게 “초자연주의surnaturalisme”의 개념을 전수했다. 보들레르는 이 개념에 의거해 자연에 대한 상상력의 우위를 표현했다. 들라크루와에 대한 언론기고는 물론이요 예술자체 외에는 예술의 목적은 없다고 보는 고티에의 관점은 보들레르와 정확히 일치했다. 또한 문학비평이나 음악비평에서 보들레르의 원칙적 독창성은 상대적이다. 즉 에드가 앨런 포도 리하르트 바그너도 파리에서 알려진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경우에 그들의 미적인 수준을 명백히 하려면 보들레르의 종합적・부연적 예술을 필요로 했다.
수용
당연히 19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그의 서정시만큼의 영향력을 보들레르의 미학저술에서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헐거웠던 미학적 사유들을 견실하게 묶어내자 그의 미학저술은 지속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꼽아보면 다음과 같겠다.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것보다, 예술가의 영혼을 그것의 본질로 보는 관념. 감각의 원천인 대상성Gegenständlichkeit과 더불어 형식에 대한 강조. 미의 시대관련성 이론. 폭넓은 측면에서 현재까지 인정받는 들라크루와미술 분석. 불란서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실을 빚었던 포열풍을 일으킨 것과 불란서의 “바그너주의wagnérisme”의 기초를 마련한 것.
서지목록
전집: Œuvres complétes, hg. von C. Pichois, Bd. 2, Paris 1976 (dt. München 1977 f.) ― Curiosités esthétiques. L'Art romantique, hg. von H. Lemaitre, Paris 1962.
저작: J. PREVOST, B., Paris 1953 (21997). ― G. May, Diderot et B. critiques d'art, Genf/Paris 1957. ― P.-G. CASTEX, B. critique d'art, Paris 1969. ― R. KOPP/G. POULET, Qui était B.?, Genf 1969. ― A. Moss, B. et Delacroix, Paris 1973. ― W. DROST, Kriterien der Kunstkritik B.s, in: B., hg. von A. Noyer-Weidinger, Darmstadt 1976. S. 410~442. ― R. LLOYD, B.'s literary criticism, Cambridge 1981. ― G. FROIDEVEAUX, B., représentation et modernité, Paris 1989. ― Y. BONNEFOY, B. contre Rubens, in: Y. B., Le Nuage rouge, Paris 21992. Y. LE PICHEON/C. PICHEIS, Le Musée retrouvé de C. B., Paris 1992.
Chris Rau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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